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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감각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를까? –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시간 감각의 진짜 이유

[1] 어린 시절, 왜 하루는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하루하루가 유난히 길었던 기억이 난다. 방학 중의 한 주는 한 달처럼 길었고, 초등학교에서 보낸 하루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시간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그 답은 어린이의 뇌가 새로운 것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에 있다. 어린 시절의 뇌는 매일 세상이 새롭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처음 가보는 장소를 방문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규칙과 개념을 익히는 시기다. 그야말로 하루가 ‘첫 경험’의 연속이다. 뇌의 해마는 처음 접하는 정보에 대해 좌표를 꼼꼼히 붙이고 기억을 정리하며, 편도체는 감정을 동반한 기억을 강화한다. 이러한 과정은 하루 동안 접한 정보의 양을 엄청나게 늘리며, 뇌는 그 정보를 세밀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하루는 길고 풍부하게 느껴진다. 어린이에게는 하루가 전체 생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 하루는 인생의 1/1800일이지만, 50세 성인에게 하루는 1/18,000일에 불과하다. 상대적인 관점에서도 어린 시절의 하루는 삶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체감 시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린이의 감정 표현은 더욱 강렬하다. 기쁨, 두려움, 놀람—all 감정의 진폭이 크고 선명하며, 이 감정들이 기억과 결합할 때 시간의 밀도는 더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는 하루가 참 길었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하루는 감각과 정보,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뇌는 그 모든 것을 세심히 기록했기 때문이다.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를까? –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시간 감각의 진짜 이유


[2] 성인이 되면 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는가?

성인이 된 후 우리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감각을 반복적으로 느낀다.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가고, 한 주는 금세 끝나며, 한 달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이렇게 성인의 시간 감각이 달라지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은 성인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반복’과 ‘익숙함’에 있다. 성인이 된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루틴으로 채운다. 출근길은 비슷하고, 업무는 정해진 패턴으로 이루어지며, 퇴근 후의 시간도 큰 차이 없이 반복된다. 뇌는 이러한 익숙함에 대해 정보를 요약하며 처리한다. 처음 접하는 장소나 경험에 대해서는 해마가 세밀히 좌표를 붙이며 기억하고, 편도체는 감정을 동반한 강한 기억을 저장한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뇌가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정보를 생략하고 요약하며, 하루 전체를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루의 정보 밀도는 낮아지고, 감각은 무뎌지며, 기억할 좌표는 줄어든다. 그래서 하루는 순식간에 사라진 듯한 느낌을 준다. 성인기의 하루는 감정의 진폭도 줄어든다. 어린 시절에는 기쁨, 두려움, 놀람 등이 자주 나타나지만, 성인이 되면 감정을 관리하고 억제하며, 일상에서 감정 표현의 폭이 좁아진다. 감정과 감각이 줄어든 하루는 더욱 기록할 만한 장면이 줄고, 기억의 밀도가 줄어들면서 하루는 압축된다. 또한 성인은 ‘목표 중심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하루를 사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뇌의 정보 처리 방식 자체를 현재의 감각보다 미래의 목표에 맞추도록 만든다. 그 결과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으로만 인식된다.


[3] 노년의 시간 감각, 그 특별한 양면성

노년기에 접어들면 시간 감각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변화한다. 많은 노인들은 “요즘은 하루가 훌쩍 간다”고 말하면서도, 특별한 날에는 “오늘은 참 긴 하루였다”는 감각을 표현한다. 이처럼 노년기의 시간 체감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일상이 더욱 루틴화된다. 은퇴 후 일과에서 업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자극의 빈도도 줄어들며, 익숙한 환경 속에서 하루가 반복된다. 이 환경에서 뇌는 성인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요약하고 생략한다. 기억의 좌표는 더욱 적게 찍히고, 하루의 감각은 더욱 흐릿해지며,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간 듯한 느낌만 남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년에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체감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는 “오랜만에 하루가 길었다”는 감각을 강하게 느낀다. 이것은 어린 시절과 동일한 뇌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뇌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해 주의력을 집중하고, 감각을 열며, 해마와 편도체를 활성화한다. 그래서 노년에도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하루는 더 길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노년기의 특징 중 하나는 ‘회고’다. 노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체감 시간과 함께 재구성한다. 이 과정은 시간 체감의 복잡성을 더한다.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지만, 저녁에 앉아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순간, 그 하루는 ‘긴 하루’로 다시 인식된다. 이처럼 노년기의 시간 감각은 감각 자극과 기억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4] 나이를 넘어 시간을 풍요롭게 체험하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풍성하고 길게 느낄 수 있을까? 정답은 ‘충분히 가능하다’이다. 시간은 시계의 숫자가 아니라 뇌의 정보 처리 방식과 감각의 밀도에 의해 체감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반복되는 일상에 갇히며 압축되지만, 뇌는 여전히 감각과 감정의 자극에 민감하다. 따라서 시간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새로움과 몰입이 필요하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더라도 한 골목만 다르게 걸어보는 것, 늘 가던 카페 대신 처음 가보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것, 점심 식사를 평소 먹지 않던 메뉴로 바꾸는 것—all 이런 사소한 변화가 뇌의 주의력을 깨우고 감각을 되살린다. 특히 노년기에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뇌에 활력을 주며, 하루를 더 길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몰입도 또 다른 핵심이다. 똑같은 산책이라도 주의 깊게 주변의 꽃과 나무를 관찰하며 걷는 산책은 감각의 밀도를 높인다. 요리를 할 때 재료의 색깔, 향, 질감을 인식하며 만드는 것, 음악을 들을 때 멜로디와 악기 소리를 구분하며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몰입은 하루를 더 길게, 더 밀도 있게 체험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은 뇌의 감각과 주의력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 단 한 가지라도 ‘처음’을 만드는 태도다. 오늘 처음 먹는 메뉴, 처음 걸어보는 거리, 처음 시도하는 대화—all 이런 사소한 첫 경험이 뇌의 주의력을 되살리고, 시간을 더 길게, 더 선명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결국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시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뇌는 새로움과 감각 자극에 여전히 민감하며, 나이를 초월해 우리의 시간을 길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